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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Battle, 러시아 하 ... - 1부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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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14회 작성일 20-01-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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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털이 참 아름답다. 그 놈의 몸도 나처럼 떨리고 있다. 문득 마주친 눈엔 내 칼이 비친다. 녀석도 나를 아니 내 칼을 의식하는 것이다. 새까만 대왕곰의 눈에 내 칼이 가득 차자마자 왼발을 왼쪽으로 길게 내 딛으며 녀석의 뒤로 돌아들어간다. 그 놈이 중심을 잃고 몸을 억지로 돌릴 때 내 검은 상단… 내리친 검은 녀석의 미간 사이에 정확히 꽂혔다.



- 푸아아악



두개골이 부서지는 느낌이 내 왼손 새끼손가락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진다. 녀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듯 하다 주욱 펴진 오른손의 괘적을 따라 검은 녀석의 미간을 타고 코를 지나 턱으로 다시 가슴팍까지 내려왔다.



한발 물러나 중단을 잡은 나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았다. 이제 남은 것은 녀석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 중단을 잡은 내 검은 녀석의 심장으로 파고든다. 아니 뇌수를 뿌리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을 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 내 구른 오른발이 다가가면서 가슴속 깊이 묻어둔 검이 질러나가는 것이다.



왼발 뒤꿈치부터 올라온 기운이 검을 타고 녀석을 관통한다. 녀석의 몸 바깥으로 튀어나온 격자부 뒷부분에서부터 녀석의 심장박동이 쿵쾅쿵쾅 느껴진다. 그래 편히 가거라… 검을 잡은 내 두 손을 걸래짜듯 비틀자마자 녀석의 거센 한숨이 내 뺨을 친다. 검을 그대로 뽑아내면서 어깨로 녀석의 가슴팍을 받아 완전히 뽑아냈다.



녀석은 아주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무릎을 꿇고 뇌수를 뿌리며 뒤로 넘어간다. 초점을 잃은 눈이 점점 커진다. 부르르 떨리는 네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그간 참았던 피가 분수처럼 퍼진다. 끝난 것이다.







“소싯적에 공부 못했던 사람 없겠소만, 나도 양학교를 잘 다닌 축이였다오. 외동인 내 뒷바라지 하시느라 우리 홀어머니가 뼛골 빠졌소만 양인 교사한테 칭찬을 독차지 한 몸이란 말이시…”



박씨 아저씨는 내 손으로 곰을 벤 후부터는 공대를 하였다. 양반님네의 손이란 이야기는 하였지만, 곰신을 벤 한량을 하대하지 못하는 것이 포수의 법이라는 것 쯤은 나도 안다.



“대문 밖 어영의 벙거지를 쓰고, 동달이를 입은 장표 위에 전대띠를 띠고, 목화를 신고, 동개를 메고, 환도를 차고, 등채를 손에 든 군관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단 말이시…”



“에고 그 애 야그 몇번만 더 들으면 백번 치겠구먼”



묵묵히 것던 행수 아저씨가 가볍게 농이다.



“백번이고 천번이고 한마디 해야되겠당께요 형님… 여튼 들어보소. 양학교 마칠쯤에서야 우리나라가 망한 것을 알았고 구 군복 입을 일 없다는 것도 알았소. 어쩔 것이오 못한다는데… 순사질이라도 해야 안되겠소”



“그래서요?”



사실 나도 궁금하긴 했다. 원체 재미있는 사람 아닌가?



“알음알음으로 순사질하려면 경찰학교라는 곳을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단 말이요. 그래서 순사학교에 필요한 서류 다 떼서 들고갔단 말이시… 근데”



“의병놈의 자식이 어딜 오냐고 맷깨나 맞았다고 했지? 박가야?”



“그럽디다… 어이 박용호 아직 살아있는가? 아니 어찌 죽은 아비 이름을 아시오 라고 물으니까 통감부 시절 극렬분자였던 자를 경찰이 왜 모르냐고 그 짓거리 하던 작자의 아들이 여기를 어딜 오냐고 한대 올려 붙입디다…”



“연좌로군요”



“연좌였읍지요. 못난 이놈이 집에와서 어미에게 이르니 어미는 복장타는 얼굴로 술만 찾읍디다. 그렇게 어미가 그 해를 못 넘기고 갔소.”



“이런…”



“어미가 삯바느질이라도 해 다주지 않으면 입에 풀칠도 못하는 이놈이 어쩌겠소. 상점에 취직하려 해도 배운 눈치로 그건 죽기보다 하기 싫고 그렇다고 농사나 짓기엔 내 삶이 버겁고 여차저차해서 룸펜놈 사탕발림에 넘어가 아부지 하던 일이나 할 수밖에…”



“그래서 이 곳에?”



“기묘년 삼월에 있던 만세 삼창이 있기 전까지 총질을 하다가 만세 운동 뒤로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오… 이름 버리고 짐승한테 십여년 총질을 하니까 총독부에서도 면허라는 것을 내줍디다. 하긴 총질하는 것으로만 치면 왜놈이나 요 녀석들이나 짐승인 것은 한결 같으니 예전 생각하고 산다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바깥소식 모르고 사는 것도 재미있는 법이지라… 산하고 들판하고 벗삼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소. 이렇게 몸 보양도 하고 말이시…”



앞서 잡은 곰 두마리의 담은 십여명의 포수랑 눈에 녹여 나눠먹었다. 눈에 싸간다 해도 선도가 떨어지니 제 값 받기 어렵다. 차라리 몸 보양하고 새놈을 잡는 편이 낫다.



첫번째 곰을 잡고 달포를 허비하고 두번째 녀석… 그리고 섣달 중순께까지 산을 뒤져 겨우 찾은 저 녀석 벌써 마을을 비운 지 두 달이다. 박제가 세포에 담이 하나… 마을 식구들 겨우나기에 충분한 육포까지 챙겼으니 이번 사냥은 한몫 잡은 것이 분명하다. 겨울벌이로는 차고 넘칠 뿐만 아니라, 엄동이 지나면 몇 번은 더 나올 수 있다.



“어여 갑시다. 요놈 발바닥에 칡술이나 한잔 켜고 푸욱 자뿌자구요.”



“담 구경 좀 했으니 올 겨울 마누라 구박은 면했네 그려…”



“예끼 이 사람아 토끼가 담 좀 마셨다고 대웅될까”



“아니… 이 사람이”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겨울해는 확실히 짧다. 특히 산중의 겨울해는 낮의 한자락만 주고 일찌감치 서산 뒤로 사라져버린다. 산 중 겨울집(토치카)에 모여 권커니 잣커니 하던 포수들은 벌써 잠자리이다. 두 달만에 마을로 가니 싱숭생숭 하겠지만서도 갈길이 짧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잔 마신 칡술 기운은 국수 말은 신 김치 국물에 날아가 버렸고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를 벗삼아 담요 말고 잠을 청해보지만 달아난 잠이 올리 만무하다.



“아니 잤더냐?”



“잠이 아니 오더이다. 형님은 어찌 잠자리에 들지 않소?”



“칡술이나 몇 대접 더 하려고 일어났다. 한잔 하려느냐?”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소.”



나는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루바닥을 들어올렸다. 싸늘한 기운에 잘 보관된 칡술은 여름 사냥때 담가 겨울에 마시는 것이 제맛이다. 짬짬이 싸짊어올린 이젠 다쉬어버린 김치와 장작불에 살짝 익힌 비계 덩어리랑 마시면 그 맛이 보통이 아니다.



“못 본 사이에 술이 제법 늘었구나”



“김치말이 국수 한 대접에 벌써 깨었소이다.”



“칡술 두어대접이면 에미애비도 못 알아본다 했는데 김칫국 한 대접으로 제정신이니 너도 주당 다 되었구나”



“광무(대한제국의 연호) 연간이였으면 장가갔을 나이오”



“예끼 욘석아 못된 송아지 부뚜막에 오른다더니 네가 딱 그짝이로다. 수현이가 보고 싶구나”



“아니보고 싶겠소. 내 처인데…”



- 퍼어억



“그래 너는 무엇이 되고자 하였더나?”



“예전에 말이오?”



“그래 예전 말이다.”



인한이형의 말끝이 조금 떨렸다. 간혹 아버지와 누이들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의 탓만은 아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데… 나는 싹싹히 말했다.



“아버지 아셨으면 불호령이 만번쯤 떨어졌을 일이나 대처에 나가 장사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오.”



“그러냐?”



“반상이 혁파되었는데 못할 것이 무에 있소? 과자 공장 끼고 제과점을 해보고 싶었다오.”



“거 좋은 생각이다. 개성만 하더라도 사시사철 손님이 끊이지 않지…”



“바로 그렇소. 경성에 나가 점원으로 제과일을 배우고 개성어름에서 왜과를 팔 생각이었다오. 창녕이 녀석, 민구 녀석을 영업사원 시키고 우리 다섯째 누이를 경리로 앉혀서 크게 해보고 싶었다오.”



“아주 재미있겠구나 새로나온 과자는 네가 먼저 맛보고?”



“이를 말이오. 새로나온 과자는 내가 미리 맛봐서 통할만 하면 내어놓고 가끔은 경성에 나가 특이한 물건도 들여올 생각이었다오.”



“아주 좋은 생각이였지만 과정이 하나 틀렸다”



“무엇이 틀렸단 말이오?”



“장사를 하려면 일단 부기를 배워야 한다.”



“부기가 무엇이오?”



“장부 쓰는 법이다. 장사의 기본은 손익인데 손익을 모르고 어찌 장사를 하겠느냐? 부기를 배우고 과자공장의 경리로 들어가 일을 익힌 다음에 사장의 양해를 얻어 사장돈으로 제과점을 내어 일을 배워야지… 제과점 점원으로 들어가면 급여도 제대로 못받을 뿐만 아니라 일의 전체를 배울 수 없단다.”



“그렇소?”



“일은 물주랑 가장 가까이서 해야하는 법이다. 그래야 기회가 있지… 물주랑 가까워질려면 물주의 돈을 관리하는 것이 제일이다. 게다가 돈을 다룰 줄 알면 제과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그래서 부기를 배워야 하는군요.”



“그렇다마다. 내가 너를 산사에 잠시 둔 것은 무예를 익혀 자신감을 얻고 또 네 신원을 복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느니라”



“신원을 복원?”



“너는 이미 황군을 살해한 불령선인의 아들이다. 총독부 치하의 조선은 연좌제가 그대로 운영되는 전근대적인 나라이니라… 게다가 너는 아직 조사도 받지 않았지… 네 이름 석자로 다닌다면 제일 먼저 갈 곳은 지서의 조서실이니라”



“그 사람 몽둥이로 두들겨 팬다는 곳 말이오?”



“그렇지 너는 악질의 아들이니까…”



순간 암담해졌다…



“그간 네 새로운 신분과 이름을 마련해뒀다. 너는 경성땅에서 자란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느니라… 공민증도 있고 네 아비 어미도 엄연히 살아 있지”



“참말이오?”



“내 말하지 아니 했더냐… 너를 더 이상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 네 꿈을 펼치거라 왜왕의 통치를 받더라도 조선은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근데 그건 옛일이오. 이젠 그 생각 접었소”



“그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이들을 죽인 것은 가토지만 왜놈의 짓이오 나는 왜놈들을 용서할 수 없소”



“왜 죽은 자들을 위해 산자의 피를 뿌리려고 하느냐?”



“부모의 원수와 한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다고 했소. 게다가 나는 이제 검술도 웬만큼 하오. 대웅도 한칼에 베었건만 왜경 서넛쯤 못베겠소?”



“하하하 겨우 미물 하나 베었다고 배짱이 대단하구나 그래 왜경 몇쯤 못베진 않겠지 근데 수현이는 어쩌고?”



“그것은…”



“왜경을 베는 것은 쉽다. 하지만 네가 왜경을 베어 네 기분을 풀 수 있겠다만 도망간 너를 바라보고 살아야할 수현이는 어쩌란 말이냐?”



“…”



“죽은 자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은 내 대에서 끝을 낼 것이다. 수많은 동지가 있고 또 수많은 선배가 있다. 너의 대에서는 우리가 되찾은 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하지 않겠느냐?”



“왜정이 끝날 것 같소? 만주는 물론 남지나까지 차지한 강대한 제국이오.”



“권불십년이라 했다. 왜놈들이 지금 이렇게 발호하지만 언젠간 그 힘을 다할 것이다. 우리 같은 운동가들이 놈들의 힘을 빼고 쓰러진 놈들의 숨통을 끊을 것이야.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여태 묻혔던 사람들로도 충분하다.”



“왜 무술을 가르쳤던 것이오?”



“너는 너와 수현이만 지키면 된다. 그리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자가 건강한 정신을 가지는 법이지…”



“괴변이오. 어찌 되었든 나는 형을 따라갈 것이오.”



“그래 오려무나 경성까지는 데려다 주지 바로 부기학원 앞 말이다.”



“간도로 갈것이랑께요.”



“능력있으면 가보거라 그나저나 늦었구나 술도 다 떨어졌고…”



어느덧 두동이의 술이 바닥을 들어냈다. 하긴 늦긴 늦었다 자시를 지나 축시의 반시진이 지났다. 이젠 자야 한다. 내일 적어도 50리는 걸어야 마을에 갈 수 있으니…



“주무시오. 내일 중참이라도 뜨신 밥 먹으려면 새벽녁엔 나가야 하니… 늦긴 늦었소이다.”



노루포로 짠 담요가 제법 폭신하다. 내일은 수현이를 본다. 두달 새 많이 이뻐졌겠지... 가슴도 커졌을 것이고 털도 복실 거릴 것이다. 옆에 있으면 좋으련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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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분에 넘치는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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